교육과 실존적 선택: 사르트르 철학을 통해 본 청소년 교육의 새로운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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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라는 단 하나의 트랙 위에서 무한 경쟁을 벌이는 한국의 교육 현실 속에서,
아이들에게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사치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뭐가 될래?"라는 질문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본질적 고민을 집어삼킨 지 오래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의 실존주의는 기존의 교육 틀을 깨부수는 혁신적인 이정표를 제시합니다.
교육은 학생을 이미 정해진 틀에 끼워 맞추는 과정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유를 항해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과정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1) 서론: '본질'의 틀에 갇힌 한국 교육의 위기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교육관은 흔히 '본질이 존재에 앞선다'는 논리를 따릅니다. 아이들을 의사, 엔지니어, 공무원이라는 사회적 규격에 맞춰 가공해야 할 원재료처럼 취급해 온 것입니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이를 뒤집어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고 선언했습니다. 인간은 먼저 세상에 던져진 존재일 뿐이며, 그 어떤 미리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청소년들이 겪는 극심한 무력감은 사르트르가 말한 '자기기만(Mauvaise foi)'과 맞닿아 있습니다. 스스로를 '성적'이나 '대학 타이틀'이라는 고정된 사물로 취급하며,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사르트르 철학을 교육에 도입한다는 것은, 아이들을 '결과물'이 아닌 '가능성'으로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2) 본문: 실존적 교육을 위한 세 가지 기둥
I. 설계도 부수기: 존재가 본질에 앞서는 교실
실존적 교육의 첫걸음은 아이가 '미완성된 제품'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실에서는 흔히 초등학교 때부터 "너는 수학 체질이 아니야"라며 아이의 본질을 미리 규정짓곤 합니다.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이는 한 인간의 실존적 자유를 박탈하는 행위입니다. 학생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만들어가는 '프로젝트' 그 자체입니다. 교사는 조각가처럼 아이를 깎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자신의 무한한 선택권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II. 단호한 책임: 자유라는 형벌과 주체성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았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교육은 아이들에게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가르치며 책임으로부터 도망칠 구멍을 만들어줍니다. 하지만 이는 성인이 되었을 때 심각한 결정 장애와 공허함을 야기합니다. 실존주의 교육은 아이들에게 '급진적 책임'을 가르칩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 결정하는 주권이 오직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 진정한 회복탄력성의 근간이 됩니다.
III. '시선'에서 벗어나기: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자아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이 나를 자유로운 주체가 아닌 하나의 '사물'로 전락시킨다고 경고했습니다.
특히 SNS와 평판에 민감한 한국 청소년들은 늘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한 삶을 삽니다.
교육은 아이들이 이러한 '타인의 시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체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력을 길러줘야 합니다.
집단주의적 문화 속에서 '남들만큼' 살아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자신의 내면적 가치에 집중하는 삶을 격려해야 합니다.
3) 결론: 본래적인 미래를 향한 교육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를 교육에 접목하는 것은 아이들의 삶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자유를 직시하고 그 무게를 견디라고 말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불안'이야말로 인간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고귀한 감정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지식을 주입하기보다, 스스로 선택할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정해진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정답을 써 내려가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사르트르가 말했듯, "인간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누군가가 짜놓은 판 위에서 움직이는 말이 아니라, 자기 삶의 당당한 설계자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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