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의 미학: 사르트르 관점에서 본 자유와 도덕적 책임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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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절대적 자유가 주는 형벌과 무게
장 폴 사르트르의 철학은 인간의 조건에 대해 아주 날카롭고도 때로는 두려운 질문을 던집니다. 그의 사상적 핵심에는 우리가 '자유라는 형벌을 받았다'는 냉혹한 깨달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유란 단순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즐거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 한 순간도 피할 수 없는, 절대적인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을 의미합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사르트르가 말하는 존재론적 자유와 도덕적 책임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그리고 그 책임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삶이 왜 하나의 '미학'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2. 본문: 선택과 불안, 그리고 실천의 삼중주
1.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자기 창조의 무거운 짐
사르트르는 인간에게 고정된 성품이란 없기에,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근원적 자유'입니다. 내 인생의 대본을 대신 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세상에 홀로 버려졌다는 고립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 고립감이야말로 도덕적 책임의 시작점입니다. 내가 내리는 모든 선택은 단순히 나 개인의 결정을 넘어, '인간이란 이래야 한다'는 하나의 표본을 세상에 제시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정직하기로 했다면, 그것은 나를 넘어 온 인류가 정직해야 한다는 가치에 투표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개인의 선택이 보편적인 무게를 갖게 될 때, 우리의 책임은 거대한 도덕적 지평으로 확장됩니다.
2. 불안과 '자기 기만(Mauvaise Foi)'이라는 도피처
완전한 자유와 그에 따른 무한한 책임을 자각할 때, 우리는 '불안(l’angoisse)'을 느낍니다. 이 불안은 마치 낭떠러지 끝에서 느끼는 현기증과 같습니다. 내 삶을 언제든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내 선택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떨게 만듭니다.
사르트르는 사람들이 이 고통스러운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기만(Bad Faith)'에 빠진다고 지적합니다. "나는 어쩔 수 없었어", "원래 그런 거야"라며 마치 자신에게 선택권이 없는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이 불안을 나의 자유에 대한 증거로 받아들이고, '선택하지 않겠다는 선택'조차 결국 나의 책임임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3. 앙가주망(Engagement), 참여와 실천의 미학
사르트르에게 도덕이란 이미 정해진 교과서의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예술 작품을 창조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세상에는 '절대적인 정답'이 미리 주어져 있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어떤 행동에 온 마음을 다해 참여(Engagement)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질 때, 그 행동은 비로소 가치를 갖게 됩니다.
화가가 정해진 규칙 없이도 자신만의 걸작을 만들어내듯, 인간 또한 불확실성 속에서 결단하고 그 결단에 끝까지 책임을 짐으로써 삶이라는 예술을 완성합니다. 이것이 바로 '책임감의 미학'입니다. 혼돈 속에서도 자신의 행동을 온전히 책임지며 스스로를 빚어나가는 모습에서 인간의 진정한 아름다움과 존엄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3. 결론: 기꺼이 자유라는 형벌을 껴안는 삶
결론적으로 사르트르가 바라본 자유와 책임은 우리에게 두려움인 동시에 가장 큰 힘이 됩니다. 그는 결정론이라는 달콤한 핑계를 걷어치우고, 우리 각자가 자기 삶의 유일한 작가임을 직시하게 합니다. 자유와 도덕적 책임은 결코 나눌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한국 사회라는 치열한 현장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르트르의 메시지는 큰 울림을 줍니다. '아름다운 삶'이란 실수나 고통이 없는 매끈한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선택에 당당히 이름을 새기고, 그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이것은 나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삶입니다. 우리는 비록 자유라는 형벌을 받았을지언정, 그 형벌을 통해 나 자신과 세상을 정의하는 고귀한 주권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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