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주의적 휴머니즘: 사르트르의 인본주의가 현대 사회에 미치는 영향

1)서론

알고리즘이 우리의 취향을 결정하고, 사회적 잣대가 성공의 기준을 강요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장 폴 사르트르의 목소리는 시대를 건너뛰어 우리 삶에 아주 묵직한 균열을 냅니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그의 유명한 선언은 단순히 어려운 철학 용어가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용도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물건'이 아니라, 먼저 세상에 던져진 뒤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자유로운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일갈입니다. 30년 넘게 한국 사회를 겪으며 느낀 사르트르의 인본주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삶의 나침반이 되어줍니다.


2)본문

1) 디지털 시대, '절대적 자유'라는 가혹하고도 고귀한 형벌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흔히 허무주의나 절망의 철학으로 오해받곤 합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인간의 가능성을 믿었던 낙관주의자였습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에게 정해진 설계도가 없기에, 우리가 "자유라는 형벌에 처해졌다"고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SNS와 미디어 속에서 수많은 선택지에 노출되어 있지만, 역설적으로 타인의 시선에 갇혀 살곤 합니다. 사르트르는 이를 '기만(Bad Faith)'이라 불렀습니다.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거나 "세상이 원래 그렇다"며 자신의 선택권을 포기하는 비겁함을 지적한 것이죠. 시스템과 알고리즘이 우리를 대신해 결정해주는 시대일수록, 사르트르의 인본주의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정말 당신의 의지로 선택하며 살고 있는가?" 진정한 삶은 상황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도 나의 선택을 책임지는 데서 시작됩니다.


2) 개인의 선택이 세상의 무게가 되는 '연대적 책임'

실존주의가 개인주의나 이기주의로 흐를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사르트르의 휴머니즘은 지극히 사회적입니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를 선택할 때, 그는 모든 인간을 선택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습니다. 내가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가 '인간이란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본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기후 위기, 사회적 양극화, 혐오의 확산 등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거대 담론들 앞에서 사르트르의 '앙가주망(Engagement, 사회 참여)' 정신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우리가 불의에 침묵하기로 선택한다면, 그것은 곧 침묵이 미덕인 세상을 만드는 데 동조하는 셈입니다. 결국 사르트르의 인본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넘어, 우리 모두의 자유를 위해 세상에 발을 담그고 행동해야 한다는 엄중한 윤리적 책임감을 일깨워줍니다.


3) 가상 세계 속에서 '진정성(Authenticity)'을 지켜내는 법

현대 사회에서 가장 치열한 싸움은 아마도 '진짜 나'를 찾는 과정일 것입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에 의해 객체화됩니다. 사르트르가 말한 '타인의 시선(The Look)'은 나를 주체가 아닌 하나의 물건으로 전락시키는 힘을 가집니다. 필터가 입혀진 사진과 좋아요 숫자로 나의 가치를 증명받으려 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소외시키게 됩니다.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은 이러한 외부의 평가와 데이터로부터 우리를 보호합니다. 나의 정체성은 고정된 박제가 아니라, 매 순간의 행동을 통해 새롭게 써 내려가는 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규정한 '본질'에 나를 맞추지 않고, 내면의 가치를 행동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된 진정한 주체로 설 수 있습니다.


3) 결론: 의식 있는 행동을 향한 시대적 부름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적 휴머니즘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를 위한 생존 지침서입니다. 그것은 피해자 코스프레라는 달콤한 위안을 빼앗아가는 대신, 우리 손에 '삶의 주도권'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쥐여줍니다. 현대 사회의 어떤 기술과 시스템도 우리 삶의 의미를 대신 만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의미는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결단과 행동을 통해 발명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돌아보니, 결국 삶은 "나는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사르트르의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인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입니다. 이제 미래라는 백지 위에 당신의 자유로 어떤 문장을 써 내려갈지, 펜은 여전히 당신의 손에 쥐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