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을 통한 철학적 사유: 사르트르의 소설과 희곡에 반영된 실존주의적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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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에게 철학은 두꺼운 전공 서적 속에 이해되지 않는 추상 개념들의 집합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장 폴 사르트르에게 철학은 단순히 분류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고 살아내며 연출해야 하는 '생생한 실전'이었습니다. 사르트르의 철학적 사유를 오랜시간 연구해온 저의 관점에서 볼 때, 그의 소설 『구토』나 희곡 『닫힌 방』 같은 문학 작품들은 난해한 철학서 『존재와 무』의 기술적 용어들이 가리고 있는 실존적 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통로입니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라는 거창한 개념을 인물의 숨결, 낯선 냄새, 그리고 숨 막히는 방의 공기로 치환함으로써 우리가 가진 자유의 무게를 직접 체감하게 합니다. 저 역시 『구토』를 머리맡에 두고 밤을 지새우며, 아무런 본질 없이 던져진 주체로서 스스로를 어떻게 빚어낼 것인가 고민해 왔습니다.
1. 서론: 철학적 실험실로서의 무대와 원고지
21세기의 초입에서도 사르트르의 문학이 유효한 이유는 인간의 조건이 결코 논리만으로는 포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실존은 근본적으로 '우연적'이며, 무질서하고, 미리 쓰인 대본이 없는 연극과 같습니다. 추상적인 이론과 '살아있는 경험'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사르트르는 소설과 희곡이라는 형식을 빌려왔습니다.
그에게 문학은 일종의 철학적 실험실이었습니다. 그는 서사 속에서 사회적 관습이라는 안락한 껍데기를 하나씩 벗겨내고, 고요한 사물들의 세계에 홀로 던져진 의식 있는 존재가 마주하는 날것 그대로의 현실을 드러냅니다. 사르트르의 문학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철학은 더 이상 '공부하는 대상'이 아니라 직접 '겪어내야 하는 사건'이 됩니다.
2. 본문: 사르트르 문학 철학의 세 가지 기둥
I. 『구토』 속에서 마주하는 존재의 '우연성'
사르트르의 첫 소설 『구토』에서 주인공 앙투안 로캉탱은 존재의 '넘쳐흐름'을 뼈저리게 의식하게 됩니다. 공원의 밤나무 뿌리를 바라보며 느끼는 저 유명한 깨달음의 순간, 로캉탱은 나무와 자신의 몸이 존재해야 할 그 어떤 '이유'도 없다는 사실, 그저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연성(Contingency)의 문학적 현현입니다. 사물의 본질은 이미 정해져 있을지 모르나, 인간은 그 어떤 이유도 없이 우연히 태어났기에 자유로운 상태에 있습니다. 본질적 의미가 없다는 자각은, 곧 나 스스로 의미를 발명해야 하는 무거운 과업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의미합니다.
II. 『닫힌 방』, 타자의 시선이라는 지옥
희곡 『닫힌 방』은 타자와의 관계를 해부합니다. "지옥은 바로 타인들이다"라는 문구는 종종 오해받곤 하지만, 사르트르는 창문 없는 지옥의 방을 통해 '시선(The Look)'의 파괴력을 보여줍니다. 타자가 나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내 세계의 주인이 아닌 타인의 세계 속 하나의 '대상'으로 전락합니다. 이 극적 설정은 우리의 내면적 자유와 타인이 강요하는 '본질' 사이의 충돌을 완벽하게 묘사합니다. 이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주체성을 어떻게 탈환하고 나만의 진정성을 지킬 것인가라는 실존적 숙제를 던져줍니다.
III. 『자유의 길』에서 보여주는 '참여'로의 이행
사르트르의 문학은 개인의 불안을 넘어 사회적 '참여(Engagement)'로 시선을 확장합니다. 3부작 『자유의 길』을 통해 그는 급진적 자유가 단순히 내면의 깨달음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인물들은 지적인 방관에서 벗어나, 세계의 운명에 책임을 지는 결단으로 나아갑니다. 실존주의적 삶을 지향하는 저에게 이 변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비록 아무런 목적 없이 태어났을지라도, 우리가 투신하는 대의와 사회적 현실 속에서 내리는 선택들을 통해 비로소 우리의 '본질'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3. 결론: 스스로 본질을 조각하는 삶의 경이로움
장 폴 사르트르는 단순한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라, 반역을 향한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의해, 혹은 주변 환경에 의해 정의된 '완성품'이라는 착각에 대한 반역 말입니다. 소설과 희곡을 통해 그는 문학이야말로 인간 정신의 '상황성'을 포착하는 가장 고귀한 철학적 소통 방식임을 증명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가르침은 제 삶의 나침반과 같은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명제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정해준 정답은 사라졌지만, 그 공백이야말로 우리가 주체적인 삶을 그려낼 수 있는 가장 넓은 캔버스입니다. 허무에 무릎 꿇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본질을 창조해 나가는 모든 실존적 단독자들에게, 사르트르의 문학은 여전히 유효한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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