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창조 행위와 실존적 자유: 사르트르가 본 예술가의 역할과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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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문득 세상의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을 맞이합니다. 사르트르의 소설 『구토』의 로캉탱이 마로니에 나무뿌리를 보며 느꼈던 그 점액질 같은 생경함, 즉 존재의 과잉이 주는 메스꺼움은 실존을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통과해야 하는 관문입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저 '던져진' 존재라는 허무는 우리를 압도하지만, 사르트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자유'라는 반전의 열쇠를 건냅니다. 본질이라는 감옥이 없기에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을 발명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르트르의 미학을 통해, 허무를 창조로 바꾸는 예술가의 숙명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1. 존재의 메스꺼움을 이기는 기투(企圖): 빈 캔버스라는 자유
사르트르에게 예술적 창조는 '이유 없는 존재'가 '이유 있는 행위'로 나아가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권태와 허무는 사물들이 아무런 의미 없이 그저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술가는 이 무의미한 세계에 직면하여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자입니다. 『구토』의 결말에서 로캉탱이 재즈 음악 'Some of These Days'를 들으며 구원을 예감하듯, 예술은 필연성 없는 세상에 인간의 의지를 각인하는 행위입니다.
예술가가 마주하는 빈 캔버스는 단순한 작업 도구가 아니라,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무(無)'의 상태입니다. 여기서 예술가는 자신의 기투(Projet), 즉 스스로를 미래로 던지는 행위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창조합니다. 수 십 년 넘게 한국 사회를 살아오며 '정해진 길'을 강요받았던 우리에게, 사르트르의 이 관점은 해방감을 줍니다. 예술은 단순히 예쁜 것을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스스로가 내놓는 가장 치열한 답변이기 때문입니다.
2. '말'을 넘어선 연대: 독자의 자유에 건네는 간절한 호소
사르트르는 자서전적 소설 『말』에서 언어가 어떻게 실존을 배반하고 우상이 되는지를 통찰했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그 '말'과 '이미지'를 통해 타인과 연결되기를 갈망했습니다. 그에게 예술작품은 작가 혼자서 완결 짓는 폐쇄된 성벽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인의 자유를 향해 던지는 "함께 이 세계를 책임지자"는 간절한 초대장입니다.
예술가가 붓을 들거나 펜을 잡는 순간, 그는 자신의 자유뿐만 아니라 관찰자의 자유를 동시에 요청합니다. 작가가 창조한 세계는 독자의 시선이 머물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습니다. 이는 실존주의자가 고독한 섬에 갇힌 존재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서로의 자유를 확인하고, 각자의 주관성이 만나는 '상호 주관적' 공간을 형성합니다. 내가 읽은 사르트르의 문장들이 나의 고뇌와 만나 새로운 삶의 동력이 되듯, 예술은 인간과 인간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연대하게 만드는 가장 고귀한 호소입니다.
3. '앙가주망'의 무게: 방관자에서 주권자로 서는 법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가라는 질문 앞에 사르트르는 '앙가주망(Engagement, 사회 참여)'이라는 단어를 던집니다. 실존주의는 결코 상아탑 속의 유희가 아닙니다. 예술가는 시대의 아픔과 모순을 자신의 작품 속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사르트르는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기로 마음먹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침묵 또한 하나의 선택이며, 그 선택에 따른 책임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변화 속에서 수 십 년을 살아온 우리에게 이 메시지는 더욱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예술가는 세상의 부조리를 목격했을 때 이를 이름 붙이고 드러낼 의무가 있습니다. 감춰진 진실을 언어와 이미지로 폭로하는 순간, 그 부조리는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예술적 창조는 곧 윤리적 결단입니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방관자의 태도를 버리고, 내 창조 행위가 인류 전체의 자유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되묻는 것—그것이 바로 사르트르가 말하는 참된 실존의 길입니다.
결론: 매 순간 자신을 발명하는 예술가적 삶
장 폴 사르트르의 철학을 관통하며 우리가 얻는 최종적인 답은 '정답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정답 없음이 곧 우리가 매 순간 정답을 만들어갈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예술은 그 권리를 행사하는 가장 극적인 방식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이라는 작품을 그려나가는 예술가입니다.
구토가 치밀어 오르는 허무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붓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내딛는 한 걸음, 내가 뱉는 한 마디가 곧 나의 본질이 된다는 엄중한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 하루를 나의 자유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사르트르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역시 고뇌를 멈추지 않되 그 고뇌를 창조의 연료로 삼아 더 나은 세계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실존주의자로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당당하고 아름다운 삶의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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