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 속의 주체성 확립: 사르트르 철학에서 '타자'와의 관계 재정립
1) 서론: 독아론(獨我論)의 덫과 마주침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기획은 고립된 의식, 즉 *pour-soi*(대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에서 시작합니다. 이 의식은 급진적 자유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정의합니다. 만약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면, 개별 주체는 의미와 가치의 유일한 원천입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만 집중하는 이러한 급진적 관점은 곧 심오한 철학적 문제와 마주칩니다. 바로 **타자(*Autrui*)의 존재**입니다. 세상은 고립된 의식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존재 속에서 살고, 선택하며, 고통받습니다.
타자와의 마주침은 주체의 안락하고 자족적인 우주를 산산조각 냅니다. 이는 주체가 완전히 통제하거나 흡수할 수 없는 요소를 도입하며, 자기 정의를 향한 탐색을 복잡하고 종종 적대적인 역동성 속으로 몰아넣습니다. 사르트르에게 이 관계는 조화로운 공존이 아니라, 의식들이 지배를 확립하거나 자율성을 보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영원한 싸움입니다. 이 글은 타인의 침입이 주체의 존재 자체를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외부의 인식 사이의 끊임없는 협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탐구하며, 사르트르 사상에서 타자가 맡는 결정적인 역할을 깊이 파고들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상호 주관성에 의해 불가피하게 정의되는 세상에서 절대적인 주체성을 추구하는 것의 내재적인 **부조리**를 살펴볼 것입니다.
2) 본문: 상호 주관성의 전쟁터
2.1. 시선 (*Le Regard*)의 현상과 자아의 소외
사르트르의 상호 주관성 설명에서 가장 중추적인 순간은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 즉 **시선 (*Le Regard*)**의 깨달음입니다. 이전에 주체는 순전히 초월적이고 능동적인 세계의 중심으로서, 자신의 기획에 상대적인 대상들(*en-soi*, 즉자,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을 조직합니다. 주체가 다른 의식적인 존재에게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 주관적인 중심은 폭력적으로 제자리를 잃습니다.
시선은 단순히 시각적인 인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아의 대상화**입니다. 내가 보여질 때, 나는 갑자기 자유롭고 선택하는 주체(*pour-soi*)에서 타자의 의식을 위한 대상(*en-soi*)으로 변모합니다. 나는 타인의 외부적 판단과 이해에 의해 붙잡히고 정의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열쇠 구멍을 들여다보며 내 기획에 완전히 몰두하고 있다면, 나는 내 세계의 중심입니다. 발소리를 듣고 내가 관찰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열쇠 구멍을 들여다보는 사람"이 됩니다—정의되고, 고정되고, 어쩌면 판단되는 실체입니다. 이 변화는 깊은 **수치심**이나 **고뇌**의 순간으로 경험됩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수치심이 아니라, 단순히 타인의 대상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고뇌입니다. 타자는 그들의 순수한 존재를 통해 나의 절대적 자유를 박탈하고 나를 정의 가능한 본질로 축소시킵니다. 시선은 사르트르적 우주에서 소외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이며, 주체로 하여금 타자의 의식에 의해 인식되는 자신의 사실성과 직면하도록 강요합니다.
2.2. 갈등은 인간 관계의 본질적 구조: "지옥은 타인들이다"
시선이 가진 대상화하고 소외시키는 본성 때문에, 사르트르는 유명하게도 **"지옥은 타인들이다"**(*L’enfer, c’est les autres*)라고 결론 내립니다. 이 인용구는 단순한 짜증에 대한 진술로 자주 오해되지만, 상호 주관성의 핵심에 있는 내재적 갈등에 대한 심오한 철학적 선언입니다.
주체의 근본적인 추진력이 **초월** (자유로운 주체가 되려는 것)을 향하고, 타자의 존재가 **대상화** (고정된 대상이 되도록 강요하는 것)를 강제하기 때문에, 모든 인간 관계는 타자의 자유를 동화시키려 하거나 타자의 대상화하는 힘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투쟁이 됩니다. 사르트르는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두 가지 주요하지만 궁극적으로 헛된 전략을 분석합니다:
- 사랑: 주체는 타인의 자유를 포착하고 소유하려 시도합니다. 타인이 자신을 그들의 세계의 중심, 정의하는 대상으로 자유롭게 보아주기를 바라며, 주체 자신은 대상화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는 항상 실패합니다. 타자가 이 비전에 헌신하는 순간, 그들은 급진적 자유를 잃게 되며, 주체는 자신이 원했던 자유가 아닌 단순한 대상을 소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 증오: 주체는 타자를 주체로서 완전히 폐지하려 시도합니다.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단순한 도구(도구화)로 축소함으로써 말입니다. 이 역시 실패합니다. 타자의 의식은 환원 불가능하게 남아 있으며 영원히 시선을 되돌려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 현실은 이러한 갈등의 극 사이를 해소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진동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집니다. 모든 상호작용은 조용한 권력 투쟁입니다. 나는 타자를 대상으로 만들어 나의 주관성을 주장하려 하고, 타인은 나를 그들의 대상으로 만들면서 저항합니다. 이 영원한 갈등은 상호 인정된 자유 위에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하려는 인간의 시도가 지닌 비극적이고 부조리한 본질을 확인시켜 줍니다.
2.3. 대상화로부터의 탈출: 진정성과 자유의 성찰적 회복
타자와의 마주침이 불가피하게 갈등적이라면, 주체는 어떻게 **진정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주체성**을 재확인할 수 있을까요? 사르트르는 사회적 조화를 통해서가 아닌, 끊임없는 성찰적 자기 인식을 통해 길을 제시합니다.
타자에 의한 대상화의 순간은 우리의 **사실성**—우리의 외부적 존재의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진정한 실존은 주체가 이 사실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외부의 인식을 자신의 진행 중인 **기획**에 통합하되, 그것이 자신을 완전히 정의하도록 허용하지 않는 것을 요구합니다. 타인의 자유를 제거하려는 헛된 노력을 하는 대신, 주체는 대상으로서 보여지는 그 순간에도, 그 대상화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선택할* 자유를 유지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의 성찰적 회복**입니다.
주체의 **책임**은 시선이 투영하는 이미지에까지 미칩니다. 진정하다는 것은 타자가 나를 정의하는 방식(예: "나는 겁쟁이로 보여진다")을 인식한 다음, 시선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시선이 할당하는 고정된 정체성을 완전히 받아들여 **자기기만(나쁜 신념)**에 빠지지 않고, 이 사실에 비추어 내 기획을 어떻게 계속할지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타인의 적대적이고 소외시키는 존재를 자기 창조의 촉매제로 바꾸는 유일한 방법이며, 세계의 대상화하는 힘에 맞서 *pour-soi*(대자)를 끊임없이 주장하는 길입니다.
3) 결론: 갈등 속에서 단련된 주체성
사르트르의 철학은 인간 존재에 대한 도전적이고 냉철한 시각을 제시합니다. 급진적 자유 속에서 태어난 개인은 자신의 존재 주장 자체가 타인의 존재에 의해 끊임없이 위협받는 **부조리한** 우주 속으로 즉시 던져집니다. 안정되고 위협받지 않는 주체성을 찾는 것은 모순입니다. 왜냐하면 타자의 시선은 불가피하게 주체를 대상으로 변모시키기 때문입니다.
사르트르의 진정한 윤리적 요구는 타인과의 유토피아적인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갈등**을 진정한 자기 창조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습니다. 주체성은 사적인 성역이기보다는, 상호 주관적 투쟁의 열기 속에서 끊임없이 **단련**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선을 성찰하고, 우리의 대상화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우리의 반응을 단호하게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되찾습니다. 우리는 타인 *때문이 아닌* 타자가 부과하려는 고정된 정체성을 초월하는 행위를 통해 주체가 됩니다. 부조리와 시선의 소외시키는 힘에 직면했을 때, 유일하게 진정한 대답은 끊임없고, 의식적이며, 책임감 있는 선택입니다.
오늘 당신은 타인이 부여한 어떤 외부적 정의를 초월하기로 선택하시겠습니까?